박사(博士)보다 밥사(35회)
베풀 줄 아는 사람이 최고... / 오수열 교수
위드타임즈 기사입력  2024/03/29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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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추구하는 가치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돈(財物)을 제일로 생각하고 돈을 벌기 위해 동분서주 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권력(權力)을 잡기 위해 노력하기도 할 것이다.

 

돈이 있으면 권력에 다가갈 수도 있을 것이요, 권력이 있으면 돈을 모을 수도 있을 것이니 둘 사이에는 뗄 수 없는 연관성이 있다고 보아야 하겠다.

   

그런데 간혹 돈과 권력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대신 명예(名譽)를 더 중시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다. 명예의 사전적 정의는 ‘자랑스런 평판’이니 이름이 좋은 의미로 널리 알려지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아무리 이름이 널리 알려진다고 할지라도 좋지 않는 의미로 알려지는 것은 명예스럽다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본다면, 한 때 이 나라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던 신창원은 말할 것도 없고, 비록 최고 권력자의 지위에까지 올랐던 전아무개, 노아무개와 함께 작년 이래 전국의 최고 스타가 된 최아무개 여인과 사법시험에 최연소로 합격했다는 구중궁궐 푸른집의 우 아무개도 명예를 얻었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따라서 명예를 얻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선(善)을 행함으로써 좋은 평판을 얻어야 하겠지만, 세상에는 특별한 자격(資格)을 획득함으로써 명예를 얻는 경우도 없지 않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박사학위’를 받는 경우가 아닐까 싶다. 박사란 특정한 학문을 전공하여 제출한 논문이 심사를 통과하여 받는 칭호를 의미하지만, 일반적으로는 “학문적으로 수준이 높을 뿐만 아니라 인격적으로도 존경 받을만한 사람”을 지칭하는 의미로 인식되고 있다.

나 또한 8년여에 걸친 타이페이와 베이징의 두 대학에서 공부한 끝에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40년의 교수 생활을 통해 근 30명의 박사제자를 길러 냈지만 박사학위는 예나 지금이나 명예스러운 칭호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산업사회의 추세 속에서 학문이 보편성보다는 전문화되어 가면서 박사학위의 취득요건과 그에 대한 인식이 과거와는 많이 달라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필자의 기억에 1970년대 전반기까지만 해도 실로 박사는 대단한 명예였다. 전 학문을 통 털어서도 박사의 숫자가 많지 않았을 뿐더러, 박사학위를 받는 과정 또한 결코 쉽지 않았다. 

 

박사학위가 대단한 것으로 여겨지다 보니 그것을 받는데 들어가는 돈 또한 적은 금액이 아니어서 자연히 돈 많이 버는 의사들이 받는 의학박사가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자연스레 대학의 정교수(正敎授)들도 ‘교수님’으로 불리기보다는 ‘박사님’으로 불리기를 선호하였고, 박사들끼리는 상대방을 김박(金博), 최박(崔博), 이박(李博) 등으로 부르는 것이 유행이었다.

우리사회에서 박사가 넘쳐나기 시작한 것은 1990년 초부터가 아닌가 싶다. 이미 김영삼 정부에서 ‘대학준칙주의’가 도입되어 일정 요건만 갖추면 대학설립을 허가하면서 어중이떠중이 대학들이 난무하게 되었고 박사학위 과정 설치허가도 풍년을 맞게 된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남산(南山)에서 돌멩이를 던지면 그 돌멩이를 맞는 사람은 아마도 박사일 것”이란 말마저 없지 않다.

현상이 이러함에도 아직까지도 우리사회에서 박사는 명예스러운 칭호에 속하고 4년제 대학의 교수가 되기 위해서는 박사학위는 거의 필수에 속한다.

 

며칠 전 중복 무렵에 가까이 지내는 김석영 지점장이 몇 사람에게 점심을 사겠다는 연락이 왔다. ‘돈이 많다고 하여 남에게 밥을 잘 사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나는 초청받는 사람을 대표하여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포도주 한 병을 답례로 건네주었다.

식사와 함께 환담을 나누는데, 정영환 이사장이 “교수님! 교수님도 박사지요? 그런데 박사보다 더 좋은 것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밥사 랍니다.”라며 나를 놀리는 바람에 우리 모두 크게 웃었다.

​밥을 잘 사는 사람 즉, 베풀 줄 아는 사람이 최고라는 것이다. 엉터리 박사도 없지 않고, 사람의 도리(道理)를 팽개치고 부모에 불효하고 스승을 고소하는 박사 또한 없지 않는 현실에서 참으로 맞는 말이라고 여겨져 “그래 자네 말이 맞네”라며 나 또한 전폭적인 동의를 표시하였다.(2017년 작) 

 

 

본문이미지▲오수열 학장 ©위드타임즈

[오수열 교수 프로필]

오수열 교수는 조선대학교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타이완국립정치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중국인민대학교 국제관계대학원에서 정치학박사를 취득했다. 

조선대학교에서 법인사무국장, 사회과학대학장, 기획실장, 사회과학연구원장, 정책대학원장 등을 역임한 후 정년퇴임하였으며 현재는 조선대학교 명예교수로 광주유학대학장, 성균관자문위원, (사)21세기남도포럼 이사장 등을 맡아 봉사하는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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